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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KE MAKES ME HAPPY

Dario Pegoretti l NOT CHAOTIC, BUT LIKE JAZZ

POSTED BY BIKE MAKES ME HAPPY | 2020-04-22


몇 달 전, 페고레티의 공방을 다녀왔습니다. 페고레티는 세상을 떠났지만,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지켜 나가는 모습은 인상 깊었습니다. 페고레티의 공방이 사라진다면 페고레티의 업적과 그의 자전거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겠죠. 다리오의 뜻을 이어가는 팀 페고레티는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입니다.

아래 글과 사진 Erik Mathy


 We are all building on what Dario left us.


2018, 8월 23일, 이탈리안 프레임 빌더, 아티스트, 음악 애호가, 암 완치자, 살아있는 전설인 다리오 페고레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62세에 생을 마감한 그는 사이클링 씬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Induráin, Cipollini , 그리고 Pantani등의 자전거는 그가 만든 자전거들이죠. 그 이후에 그의 이름으로 된 공방을 시작했습니다. 전통주의자이면서도 인습 타파 주의자인 그는 기술, 프레임 디자인, 페인팅 분야를 끊임없이 발전을 하면서도, 스틸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죠. 그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유명한 마스터였습니다. 다리오의 특화된 개성과 기술력은 이 세계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는데, 그의 성공 스토리에는 Pietro Pietricola, Cristina Würdig, Gianmaria Citron, Andrea Meggiorini로 이루어진 소수지만 숙련된 사람들이 뒷받침을 해주고 있죠. 다리오와 함께 일했을 뿐만 아니라, 다리오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친구, 멘토, 공동 작업자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그렇게 그는 떠나버렸죠. 누군가 떠나면 무엇이 남나요? 그들은 사람,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기술과 통찰력, 그들이 만들어놓은 예술들이 남죠. Memories. Love. Loss. Friendship.


유산.


많은 사람들이 다리오의 자전거를 그가 남긴 영원한 유산이라고 말하지만, 그가 남긴 사람들이 진정한 유산입니다. 전 페고레티 공방에서 하루를 보낸 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기능성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입니다. 다리오의 영향력은 어디에나 있죠.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음악과 벽을 채운 예술, 그곳만의 증표, 가장 중요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Cristina, Pietro, Giancarlo, Andrea에게 다리오에 대해 물어봤죠... 그들이 그를 만났을 때, 그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떤지, 그가 남긴 마크들과 그들이 꾸려나갈 미래는 어떤지, 그리고 Pegoretti Cicli 자체의 모습은 어떨지...


CRISTINA WÜRDIG

FRIEND & GENERAL MANAGER 

다리오는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아버지 같았습니다. 그는 안정되고, 조언을 줄 수 있었고, 제가 비행기에서 내려서 제일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었죠. 그가 세상을 떠난 날에 다리오와 한 시간 정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기분이 좋았어요!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죠. 그 23일은 악몽이었죠. 장례식은 3-4일 정도 후였습니다. 우리는 그날 점심을 함께했어요. Pietro와 저는 손을 씻었습니다. Pietro는 고개를 들고 저의 새 직장에 대해 물어보더군요. 그리고는 몇 주 정도만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죠. 1, 2주는 몇 달로 늘어났죠. 변호사와 다리오의 아들은 Pietro에게 비즈니스 파트너가 필요하고 말했고 Pietro는 "누가 필요한지 알았어. 바로 Cristina야!" 그렇게 여기 있게 된 거예요. 제가 20년 동안 일했던 Brooks에서 해고되자마자 전화한 건 다리오였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다리오는 저에게 자전거 업계를 떠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어요! "마케팅이 가르칠 수 없는 게 있지. 바로 인내심이야." 제가 Brooks를 떠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에요. 우리는 누군가가 다시는 살지 않을 이 워크숍에서 그 순간을 보냈습니다. 장례식 다음날 여기에 와서 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은 울면서 방문해 주셨죠. 이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리오의 영혼이 여기 있어요. 그가 우리에게 뭔가를 남겼다는 걸 알죠. 그가 나에게 준 건 내가 그를 알수록 나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거였어요. 안정적이고 성숙해지고 사색적이고.. 나는 행운이에요. 그는 저를 내적으로 더 좋은 사람을 만들어줬죠. 사람들은 그를 프레임빌더로써만 얘기해요. 나는 내 친구이자 멘토를 잃었어요.그는 당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어요. 다리오는 저 의자에 두 시간 정도 앉아서 당신의 문제를 아무 말 없이 들어줍니다. 당신을 그의 깊은 눈으로 지켜봐 주죠. 당신이 얘기를 다 하고 나면 그는 한 마디만 해줘요. 그럼 됩니다.



 

GIANMARIA CITRON

MENTEE, FABRICATOR, FRAMEBUILDER

제가 그에 대해 들었던 건 8년 전이에요. 그 당시 자전거 수집과 디자인 빠져있을 때였는데 다리오를 알고 나서 더 열정이 생겼었죠. 누군가가 저에게 다리오에 대해 말해준 6년 후에 Verona에 그가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인생에서 뭔가 새로운 걸 찾고 있을 때였어요. 워크숍에 지원을 했고 받아졌죠. 다리오는 우리에게 파일, 토치, 망치, 그리고 튜브를 잴 몇 가지 도구들만 있으면 된다고 알려줬어요. 수업 마지막에 대화를 나눴어요. 그는 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프레임 빌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 줬어요. 전 떠났고, 2년 동안 제 친구들 위해 자전거를 만들었어요. 저는 다리오에게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해서 몇 가지를 제안했어요. 2년 후에 저와 제 비즈니스 파트너가 갈라서게 되었죠. 그때 마침 다리오가 베로나로 공방을 옮기는 시기였고 두 명이 더 필요하다고 했어요. 저는 바로 물어봤고 그는 "YES"라고 말했죠. 그렇게 전 여기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네요. 난 여기, 페고레티 공방에 있는 게 좋아요. 여기에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어요. 매일매일 항상 새로운 무언가가 있죠. 지루할 틈이 없어요.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피곤하지만 알맞은 곳에 있다는 생각에 행복합니다. Pegoretti Cicli로 바꾸는 걸 생각하고 있어요. 다리오 없이 그림도 조금 바뀌기도 했습니다.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방식도 이해합니다. 미래엔 우리가 하는 것들을 바꾸고 싶을 지도 모르죠. 다리오가 40년 동안 한 일을 보면 그가 시도했던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나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죠. 세상은 모든 것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한 가지에 집중하더라도 그 분야에 최선을 다하면 되죠. 디스크 프레임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아직 모르죠. 그 분야에 대해 충분한 경험이 있나요? 스틸이 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나요? 우리는 확인하고 싶죠. 우리가 그 일을 잘 안다고 할지라도, 왜 이런 일이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당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으세요. 다리오는 왜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 물어본 첫 번째 사람이었어요. 그가 내가 가르쳐준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었죠.








PIETRO PIETRICOLA

FRIEND, FABRICATOR, FRAMEBUILDER, PAINTER, PARTNER.

96년 1월, 바에서 다리오를 처음 만났어요. 이 이야기는 믿기 힘든 이야기죠. Trentino 역, 기차에서 내려서 역에 있는 바에 갔습니다. 바 직원한테 금속을 다루는 회사가 있냐고 물어봤어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거든요. 다리오는 그때 건너편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그는 일할 만한 곳을 안다고 했고 데려다주었죠. 나는 그 금속 회사에서 3년을 일했어요. 다리오의 공방에서도 가까웠죠. 1시부터 3시까지 점심시간이었는데 다리오랑 매일매일 점심을 함께 먹었고, 우린 그렇게 친구가 되었죠. 다리오가 밤에만 파트타임으로 프레임 용접 일을 할 생각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하루에 2-3대 프레임을 용접했어요. 결국 다리오는 제가 금속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일해달라고 했어요. 근데 한 대당 5유로 주더군요.. 이런 걸 영어로 뭐라고 하죠? 맞아요. 그는 좀생이였어요! 하하하. 모두 미치는 방식이 가지각색이죠. 여긴 항상 일하기 재미있는 곳이었어요. 우린 항상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우리 팀은 훌륭하지만 다리오의 빈자리는 큽니다. 그가 너무 그리워요. 다리오로부터 일 부분에서는 엄격하고 진지한 것을 많이 배웠어요. 그는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회사를 키우는 법도 알고 있었죠. 저에겐 지난 20년 동안 해왔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에겐 더 이상 다리오가 없고, 뭔가가 바뀌어야만 하죠. 예를 들어 지금 우리 공방은 깨끗하답니다. 하하 다리오가 없으니까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회사가 나아갈 곳인 건 당연한 일이죠. 단지 다른 이유로 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다리오 없이 우리가 하는 건 달라지겠죠. 우린 여기서 계속 우리의 미래를 계획해 나갈 거예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곳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팀으로 만들어져있어요. 다리오는 없지만 우리는 물건으로 보여줘야죠.







ANDREA MEGGIORINI

PAINTER

다리오를 베로나에서 일자리를 알아볼 때 만났어요. 다리오의 아들이 공방을 보여줬죠. 피에트로와 먼저 얘기를 하고 다리오를 만났어요. 그때 전 U-23 카테고리에서 레이싱하고 있을 때였죠. 레이싱에 흥미가 떨어지고 뭔가 다른 걸 찾고 있을 때였어요. 레이싱을 그만둔 날, 고향에서 자전거 메카닉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일 년 반쯤 후인가, 베로나에 있는 자전거 숍에 가게 됐고, 일 년 동안 거기서 일했어요. 제 레이스 코치님을 통해서 다리오가 페인터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리오는 경험이 없는 사람을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죠. 다리오는 많은 능력을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설명에는 아주 취약했죠. 그는 그냥 하는 걸 보여주고 당신이 보고 배우길 기대합니다. 피에트로도 가르쳐줬어요. 0부터 1은 다리오가, 1부터 10은 피에트로가 가르쳐줬죠. 피에트로는 자전거 만드는 모든 과정, 빌딩부터 페인팅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다리오는 저에게 특별한 걸 창조하는 그 순간들을 많이 보여줬어요. 그 감각, 혼란스럽지 않지만 재즈 같달까. 나는 다리오가 나에게 가르쳐준 스타일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그가 했던 걸 카피하고 싶진 않죠. 우리 모두가 다리오가 남긴 걸 우리만의 스타일로 구축해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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